저는 항상 바램이 하나 있는게 내가 쓴 글을 10년 후에 읽어도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.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것 같은게, 방금 전에 쓴 문장을 덜 부끄럽게 하기 위해 더 세련된 어휘를 찾아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 늘상인데 말입니다.
그래도 이왕 그런 목표, 소망을 하는 거 요즘은 글을 매우 신중히 써 보고 있습니다. 문장 하나 하나를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며 고생하면 결과는 실패의 연속입니다. 할 수 있는 말이 안녕하세요, 감사합니다, 사랑합니다, 안녕히 가세요 밖에 없습니다. 중학교 인사도 아니고 원,,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.
1시간 동안 쓴 말이 그런 뻔하디 뻔한 말들 뿐이었는데 그걸 읽으며 쓰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. 진리는 안 변하는구나. 내가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사실들은 너무나 자명해서 누가 그 사실을 말하나 안 말하나 세상에 차이가 없는 사실 뿐이구나.
그런 사실들은 말하나 마나 소용이 없는가? “나는 사람이다” 라고 말하고 쪽팔릴 사람 세상에 없습니다. 그런 말을 하나 마나 세상이 안 변한다는게 문제지만요. 부끄러움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사소한 의견도 개진 할 수 없는 것이 삶인가 하는 생각에 세상이 좀 뻔뻔해 보였습니다. 시시콜콜한 말만 하다가 잿빛이 되는 것이 인생이었던가요..
“저항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다”.. 라고 하셨나. 홍원서 교수의 지도교수 중 한 분이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.
결국 쪽팔림을 감수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나 봅니다. 그렇다면,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작은 의견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요? 세상에서 말하는 “진리”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, 그 이야기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잖아요.
또 하나는 뻔한 소리들도 그렇게 힘없는 소리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. 힘내고 열심히 해라. 포기하지 마라. 고생 끝에 낙이 온다. 세상에는 뻔하디 뻔하지만 죽고 싶은 사람을 몇초, 몇분, 나아가서 몇 년은 더 살아가게 만들 수 있는 따뜻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.
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무엇이라도 일단 씁니다.
높은 확률로 10년 뒤의 나는 이 글을 읽고 에라이 이게 뭐니 하겠지요
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생각 하나가 누군가에게, 혹은 나에게 작은 불씨가 된다면,
그 부끄러움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값진 것이 아닐까.. 합니다